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로마서 6:14

신자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저는 자주 법 아래 사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 잘 살았는가, 오늘 기도는 충분했는가, 오늘 말씀은 얼마나 붙잡았는가. 스스로를 채점하며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잘한 날은 잠시 안심했고, 못한 날은 오래 무너졌습니다. 그것이 신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할까요. 법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만, 그것을 해낼 힘은 주지 않습니다. 저는 수없이 결심했고, 수없이 무너졌습니다. 오늘은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한 날 저녁, 다시 같은 자리에 넘어져 있는 저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법 아래 있는 한, 저는 제 힘으로 저를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고칠 수 없어서, 밖에서 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다르게 말합니다. 신자는 자기 행위와 공로에 의존해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승리한 날도, 패배한 날도, 그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볼 때 그리스도를 보시듯 보십니다.

이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죄가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을 다시 주장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저를 죄는 다시 지배할 수 없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얻은 영광스러운 신분은 그로 인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의 구원과 궁극적 운명은 저의 실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은혜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법 아래 있던 저는 벌 받을까 두려워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저는, 이미 받은 사랑에 감격해서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억지로 하던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됩니다. 의무가 반응이 됩니다. 이것이 은혜가 하는 일입니다. 죄책감은 사람을 잠시 조심하게 만들 뿐이지만, 은혜는 사람을 실제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니 이제 저는 압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삶에는 쉼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삶에는 자유와 기쁨, 안식과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 그 안에서 만족하며 쉬는 것. 그것이 은혜 아래 사는 삶입니다.

오늘도 저는 저의 행위를 계산하는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제게 주어진 신분을 다시 붙잡습니다. 저는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저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도 안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 행위가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일 안에서 살게 하소서.

오승주

Sermons

가까워진 말씀, 가까워진 하나님

"너희는 행하라"에서 "하나님이 베푸신다"로 사람이 스스로 하지 못하던 일을 하나님이 직접 하십니다.

  • 신앙, 어디까지 가야 하나?2026.07.19
  • 축복의 상속자,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리라2026.07.12
  •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백성2026.07.05
Letters

누굴 믿고 있는가

이번 주 주일말씀을 준비하며, 계속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앞에 서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담대함의 근거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가신다"는 사실 하나였다는 걸 다시 보면서, 저 스스로도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2026.08.02
  • 내가 못 하던 일을, 주께서 하십니다2026.07.26
  •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기를2026.07.19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

신자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저는 자주 법 아래 사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 잘 살았는가, 오늘 기도는 충분했는가, 오늘 말씀은 얼마나 붙잡았는가. 스스로를 채점하며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잘한 날은 잠시 안심했고, 못한 날은 오래 무너졌습니다. 그것이 신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할까요. 법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만, 그것을 해낼 힘은 주지 않습니다. 저는 수없이 결심했고, 수없이 무너졌습니다. 오늘은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한 날 저녁, 다시 같은 자리에 넘어져 있는 저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법 아래 있는 한, 저는 제 힘으로 저를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고칠 수 없어서, 밖에서 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다르게 말합니다. 신자는 자기 행위와 공로에 의존해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승리한 날도, 패배한 날도, 그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볼 때 그리스도를 보시듯 보십니다.

이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죄가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을 다시 주장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저를 죄는 다시 지배할 수 없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얻은 영광스러운 신분은 그로 인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의 구원과 궁극적 운명은 저의 실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은혜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법 아래 있던 저는 벌 받을까 두려워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저는, 이미 받은 사랑에 감격해서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억지로 하던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됩니다. 의무가 반응이 됩니다. 이것이 은혜가 하는 일입니다. 죄책감은 사람을 잠시 조심하게 만들 뿐이지만, 은혜는 사람을 실제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니 이제 저는 압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삶에는 쉼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삶에는 자유와 기쁨, 안식과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 그 안에서 만족하며 쉬는 것. 그것이 은혜 아래 사는 삶입니다.

오늘도 저는 저의 행위를 계산하는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제게 주어진 신분을 다시 붙잡습니다. 저는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저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도 안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 행위가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일 안에서 살게 하소서.

Gospel Church Symbol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로마서 6:14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