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 구원의 사건. 이스라엘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을 뿐. 전적인 은혜.
요단강 - 결단의 강.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 광야 40년의 옛 습관을 묻고 건너가는 강.
요단 건너는 천국이 아닙니다. 건너서 처음 만난 것은 여리고 성벽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쉬는 땅이 아니라 싸움의 땅입니다.

SOLA SCRIPTURA
가스펠교회의 모든 말씀 메시지는 성경을 중심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홍해 - 구원의 사건. 이스라엘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을 뿐. 전적인 은혜.
요단강 - 결단의 강.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 광야 40년의 옛 습관을 묻고 건너가는 강.
요단 건너는 천국이 아닙니다. 건너서 처음 만난 것은 여리고 성벽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쉬는 땅이 아니라 싸움의 땅입니다.
"이에" - 8절의 묵상이 10절의 행동으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 만나를 먹던 광야의 방식이 끝나갑니다. 공급이 끊긴 게 아니라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사흘 안에" - 결단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끝나지 않고 손과 발로 나타납니다.
이 세 지파는 이미 기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건널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뒤에서 응원이 아니라 앞장서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형제가 다 얻을 때까지.
먼저 받은 자에게 하시는 말씀은 "쉬어라"가 아니라 "앞서 건너가라"입니다.
이것이 전도이고 섬김입니다.
1장에 "강하고 담대하라"가 네 번 나옵니다.
6, 7, 9절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그런데 18절은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돌려드립니다.
말씀이 강단에서 회중으로, 회중에서 다시 강단으로 흐릅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다 행하겠습니다" 했던 그 백성이 결국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우상을 섬겼습니다.
결단은 뜨거웠지만 그 뒤의 일상이 문제였습니다.
가나안은 축복의 땅인 동시에 유혹의 땅입니다. 결단은 한 번이지만 순종은 매일입니다.
건너오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앞서 건너오셨고, 우리가 안식을 얻기까지 십자가에서 끝까지 싸우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결단은 이를 악문 각오가 아니라, 먼저 건너오신 분을 따라가는 걸음입니다.
홍해 - 구원의 사건. 이스라엘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을 뿐. 전적인 은혜.
요단강 - 결단의 강.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 광야 40년의 옛 습관을 묻고 건너가는 강.
요단 건너는 천국이 아닙니다. 건너서 처음 만난 것은 여리고 성벽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쉬는 땅이 아니라 싸움의 땅입니다.

"이에" - 8절의 묵상이 10절의 행동으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 만나를 먹던 광야의 방식이 끝나갑니다. 공급이 끊긴 게 아니라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사흘 안에" - 결단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끝나지 않고 손과 발로 나타납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여호수아 1:10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 1:11
이 세 지파는 이미 기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건널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뒤에서 응원이 아니라 앞장서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형제가 다 얻을 때까지.
먼저 받은 자에게 하시는 말씀은 "쉬어라"가 아니라 "앞서 건너가라"입니다.
이것이 전도이고 섬김입니다.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여호수아 1: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여호수아 1:15
1장에 "강하고 담대하라"가 네 번 나옵니다.
6, 7, 9절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그런데 18절은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돌려드립니다.
말씀이 강단에서 회중으로, 회중에서 다시 강단으로 흐릅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다 행하겠습니다" 했던 그 백성이 결국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우상을 섬겼습니다.
결단은 뜨거웠지만 그 뒤의 일상이 문제였습니다.
가나안은 축복의 땅인 동시에 유혹의 땅입니다. 결단은 한 번이지만 순종은 매일입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여호수아 1:16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여호수아 1:18
건너오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앞서 건너오셨고, 우리가 안식을 얻기까지 십자가에서 끝까지 싸우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결단은 이를 악문 각오가 아니라, 먼저 건너오신 분을 따라가는 걸음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립보서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