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가복음 10:14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마가복음 10:16

은혜는 우리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서엘이가 처음으로 예배에 왔습니다. 신생아 축복기도를 시작하는데 서엘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기도하는 내내 멈춰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런데 멈추지 않았습니다. 울음소리 위로 축복의 말을 계속 얹었습니다.

이상한 건, 기도하는 내내 그 아이가 그리고 그 가정이 너무 사랑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아빠 집사님, 엄마 집사님, 그리고 첫째 로운이까지. 둘째 서엘이를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나중에 마가복음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시끄럽고, 정신없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주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에 안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안으셨습니다. 그 품 안에서 아이들이 울었는지 웃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예수님이 축복의 손을 얹으셨다는 것뿐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축복하고 계실 때에도,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울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 신앙생활 할 때 예배에 가기만 하면 울었습니다. 속상한 일, 고달픈 일,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렇게나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는 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도 각자의 요단강 앞에 서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가정 때문에, 일 때문에, 관계 때문에. 마음이 무너져 있어서 도저히 건널 수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요.

그런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좀 정리되고 나서, 마음이 좀 잡히고 나서, 그때 다시 나아가야지.
그런데 서엘이를 안고 기도하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리되기를 기다리셨다가 축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울고 있는 채로 축복받아도 됩니다. 흔들리는 채로 건너가도 됩니다. 요단강 앞에서 두려워하는 그 마음 그대로 발을 담가도 됩니다. 물이 갈라진 다음에 건너는 게 아니라, 발을 담글 때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만 벌써 신생아 축복기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만 셋이 더 대기 중입니다.
청년들이 교회에 오고,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는 것도 진짜 너무 큰 복입니다.
아이들에게 축복하고, 사랑하고, 또 말씀을 전하는 일. 그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울음소리가 아무리 커도, 계속 은혜를 공급할 것입니다. 축복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울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 울음 위로 축복이 얹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오승주

Sermons

언약궤를 따라가라

40년 광야의 밤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됩니다.

  • 기생 라합의 믿음2026.09.20
  • 건너기로 결단하라2026.09.13
  • 무기보다 먼저 주신 것!2026.09.06
Letters

복음을 듣고 살아가는 우리교회

교회 안에서 복음이 훼손되는 방식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교묘합니다.

  • 주의 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2026.09.20
  • 말씀 앞으로 다시2026.09.06
  •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사람2026.08.30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

은혜는 우리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서엘이가 처음으로 예배에 왔습니다. 신생아 축복기도를 시작하는데 서엘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기도하는 내내 멈춰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런데 멈추지 않았습니다. 울음소리 위로 축복의 말을 계속 얹었습니다.

이상한 건, 기도하는 내내 그 아이가 그리고 그 가정이 너무 사랑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아빠 집사님, 엄마 집사님, 그리고 첫째 로운이까지. 둘째 서엘이를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나중에 마가복음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시끄럽고, 정신없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주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에 안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안으셨습니다. 그 품 안에서 아이들이 울었는지 웃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예수님이 축복의 손을 얹으셨다는 것뿐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축복하고 계실 때에도,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울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 신앙생활 할 때 예배에 가기만 하면 울었습니다. 속상한 일, 고달픈 일,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렇게나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는 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도 각자의 요단강 앞에 서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가정 때문에, 일 때문에, 관계 때문에. 마음이 무너져 있어서 도저히 건널 수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요.

그런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좀 정리되고 나서, 마음이 좀 잡히고 나서, 그때 다시 나아가야지.
그런데 서엘이를 안고 기도하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리되기를 기다리셨다가 축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울고 있는 채로 축복받아도 됩니다. 흔들리는 채로 건너가도 됩니다. 요단강 앞에서 두려워하는 그 마음 그대로 발을 담가도 됩니다. 물이 갈라진 다음에 건너는 게 아니라, 발을 담글 때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만 벌써 신생아 축복기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만 셋이 더 대기 중입니다.
청년들이 교회에 오고,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는 것도 진짜 너무 큰 복입니다.
아이들에게 축복하고, 사랑하고, 또 말씀을 전하는 일. 그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울음소리가 아무리 커도, 계속 은혜를 공급할 것입니다. 축복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울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 울음 위로 축복이 얹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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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가복음 10:14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마가복음 10:16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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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
Trans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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