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편 122:1

주의 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주일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저는 요즘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함을 무너뜨리려는 영적인 힘이 분명히 있다는 것도, 조금씩 더 선명하게 느낍니다.

그 힘은 정면으로 오지 않습니다. "예배 드리지 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훨씬 교묘합니다. "삶이 예배다", "일상이 예배다"라는, 그 자체로는 참된 말들을 앞세웁니다. 그리고 그 말 뒤에서, 슬며시 주일예배의 자리를 밀어냅니다. 모든 것이 예배라는 말이, 결국 아무것도 특별히 예배가 아니게 만드는 것입니다. 삶으로 확장된 예배가 주일예배를 삼켜버리면, 남는 것은 경배도 경외도 찬송도 없는 막연한 신앙생활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서서히 다른 무언가로 바뀝니다. 내가 편하려고, 내가 복 받으려고, 내가 행복하려고 다니는 곳. 그리고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내가 편하려고 다니던 곳은, 내가 불편해지는 순간 가장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처음부터 나를 중심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배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초대교회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살아냈습니다. 주후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 로마 아프리카 속주 아비티나의 그리스도인 사십구 명이 주일예배를 드리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재판장이 왜 금지된 모임에 나갔느냐고 묻자, 그들 중 한 사람인 사투르니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주의 날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Sine Dominico non possumus)."

그들에게 주일예배는 취향이나 습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신앙 자체가 존립할 수 없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순교했습니다. 예배 한 번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 앞에서, 저는 제가 얼마나 쉽게 예배를 미루고 있는지 부끄러워집니다.

시편 기자도 같은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그에게 예배의 자리로 가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었습니다. 억지로 가는 곳이 아니라, 가자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뛰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첫째 이유는 내가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경배받으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말씀이 계속 전해지는 그 자리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솔직히 저조차 그 무게를 다 알지 못합니다.

"주여, 저에게 주일을 다시 가르쳐 주소서. 사인 도미니코 논 포수무스, 주의 날 없이는 살 수 없다던 그 고백을, 제 삶에도 심어 주소서"

오승주

Sermons

언약궤를 따라가라

40년 광야의 밤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됩니다.

  • 기생 라합의 믿음2026.09.20
  • 건너기로 결단하라2026.09.13
  • 무기보다 먼저 주신 것!2026.09.06
Letters

복음을 듣고 살아가는 우리교회

교회 안에서 복음이 훼손되는 방식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교묘합니다.

  • 은혜는 우리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2026.09.13
  • 말씀 앞으로 다시2026.09.06
  •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사람2026.08.30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

주의 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주일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저는 요즘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함을 무너뜨리려는 영적인 힘이 분명히 있다는 것도, 조금씩 더 선명하게 느낍니다.

그 힘은 정면으로 오지 않습니다. "예배 드리지 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훨씬 교묘합니다. "삶이 예배다", "일상이 예배다"라는, 그 자체로는 참된 말들을 앞세웁니다. 그리고 그 말 뒤에서, 슬며시 주일예배의 자리를 밀어냅니다. 모든 것이 예배라는 말이, 결국 아무것도 특별히 예배가 아니게 만드는 것입니다. 삶으로 확장된 예배가 주일예배를 삼켜버리면, 남는 것은 경배도 경외도 찬송도 없는 막연한 신앙생활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서서히 다른 무언가로 바뀝니다. 내가 편하려고, 내가 복 받으려고, 내가 행복하려고 다니는 곳. 그리고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내가 편하려고 다니던 곳은, 내가 불편해지는 순간 가장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처음부터 나를 중심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배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초대교회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살아냈습니다. 주후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 로마 아프리카 속주 아비티나의 그리스도인 사십구 명이 주일예배를 드리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재판장이 왜 금지된 모임에 나갔느냐고 묻자, 그들 중 한 사람인 사투르니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주의 날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Sine Dominico non possumus)."

그들에게 주일예배는 취향이나 습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신앙 자체가 존립할 수 없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순교했습니다. 예배 한 번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 앞에서, 저는 제가 얼마나 쉽게 예배를 미루고 있는지 부끄러워집니다.

시편 기자도 같은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그에게 예배의 자리로 가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었습니다. 억지로 가는 곳이 아니라, 가자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뛰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첫째 이유는 내가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경배받으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말씀이 계속 전해지는 그 자리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솔직히 저조차 그 무게를 다 알지 못합니다.

"주여, 저에게 주일을 다시 가르쳐 주소서. 사인 도미니코 논 포수무스, 주의 날 없이는 살 수 없다던 그 고백을, 제 삶에도 심어 주소서"

Gospel Church Symbol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편 122:1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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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orm.
Radi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