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로마서 2:21

복음을 듣고 살아가는 우리교회

교회 안에서 복음이 훼손되는 방식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교묘합니다.

누군가 강단에서 "예수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즉시 알아차리고 거부할 것입니다. 그런 식의 노골적인 부인은 오히려 쉽게 걸러집니다. 그런데 교묘하게, 조용하게 복음을 훼손합니다.

율법주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결정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에 전통을 말하거나, 지켜야 할 관습을 더합니다. 이런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온전한 신앙이라는 식입니다.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 곁에 슬며시 다른 조건을 하나 더 세워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건은 시대마다, 문화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세대마다, 복음이 어떤 새로운 형태의 요구로 다시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 분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을 어둡게 하는 도덕주의 역시 복음을 분명하고도 노골적으로 부인하면서 교회 안에서 자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복음은 새로운 형식으로 문화에 순응해야 한다는 요구와 같이 훨씬 더 교묘한 방식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어야 하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분별은 신학책 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구체적인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첫째, 나는 지금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려 하는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봉사의 양, 헌금의 액수, 성경 지식, 신앙생활의 연차로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려고 하는 태도이다.

둘째, 복음은 나에게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은가. 주일에 배운 진리(강단 말씀)가 삶 속에서의 대화, 가정에서의 말투, 혼자 있는 시간의 생각까지 바꾸고 있는가.

셋째, 복음은 나에게 과거의 사건인가, 지금도 일어나는 일인가. 복음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은 회심의 그날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감사함이 가득하고, 찬송함과 기쁨으로 헌신하는 태도와 자세로 예배하게 됩니다.

이 새로워짐은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그 일을 시작하고 이루어 갑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서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은혜를 다시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듣고, 복음을 살아내길 원하십니다.

“성경을 통해 자기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위험해질 수 있다. 당신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성경을 많이 알수록 더 해로울 것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오승주

Sermons

언약궤를 따라가라

40년 광야의 밤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됩니다.

  • 기생 라합의 믿음2026.09.20
  • 건너기로 결단하라2026.09.13
  • 무기보다 먼저 주신 것!2026.09.06
Letters

주의 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주일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저는 요즘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함을 무너뜨리려는 영적인 힘이 분명히 있다는 것도, 조금씩 더 선명하게 느낍니다.

  • 은혜는 우리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2026.09.13
  • 말씀 앞으로 다시2026.09.06
  •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사람2026.08.30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

복음을 듣고 살아가는 우리교회

교회 안에서 복음이 훼손되는 방식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교묘합니다.

누군가 강단에서 "예수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즉시 알아차리고 거부할 것입니다. 그런 식의 노골적인 부인은 오히려 쉽게 걸러집니다. 그런데 교묘하게, 조용하게 복음을 훼손합니다.

율법주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결정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에 전통을 말하거나, 지켜야 할 관습을 더합니다. 이런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온전한 신앙이라는 식입니다.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 곁에 슬며시 다른 조건을 하나 더 세워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건은 시대마다, 문화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세대마다, 복음이 어떤 새로운 형태의 요구로 다시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 분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을 어둡게 하는 도덕주의 역시 복음을 분명하고도 노골적으로 부인하면서 교회 안에서 자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복음은 새로운 형식으로 문화에 순응해야 한다는 요구와 같이 훨씬 더 교묘한 방식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어야 하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분별은 신학책 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구체적인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첫째, 나는 지금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려 하는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봉사의 양, 헌금의 액수, 성경 지식, 신앙생활의 연차로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려고 하는 태도이다.

둘째, 복음은 나에게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은가. 주일에 배운 진리(강단 말씀)가 삶 속에서의 대화, 가정에서의 말투, 혼자 있는 시간의 생각까지 바꾸고 있는가.

셋째, 복음은 나에게 과거의 사건인가, 지금도 일어나는 일인가. 복음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은 회심의 그날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감사함이 가득하고, 찬송함과 기쁨으로 헌신하는 태도와 자세로 예배하게 됩니다.

이 새로워짐은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그 일을 시작하고 이루어 갑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서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은혜를 다시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듣고, 복음을 살아내길 원하십니다.

“성경을 통해 자기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위험해질 수 있다. 당신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성경을 많이 알수록 더 해로울 것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Gospel Church Symbol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로마서 2:21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