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새벽집회라는 영적 연병장에서 우리 모두가 기도의 무릎을 단단히 하고 있는 이 거룩한 주간, 우리는 신명기 21장의 말씀을 마주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음과 저주, 그리고 책임에 관한 무거운 법규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가운 법전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이 강렬하게 비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형벌의 선언이었습니다.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단순히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끊어진 '저주받은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부활의 신비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그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수치와 저주, 그리고 도끼날이 빠진 인생처럼 수습할 수 없었던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짊어지시고 나무 위에서 침묵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신명기가 선언한 '저주받은 죽음'의 마침표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 저주의 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우리는 여전히 신명기 21장의 법 아래 정죄받으며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나무에 달린 저주가 더 이상 우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부활은 죽음이 승리한 것 같은 세상의 판결을 뒤집으신 하나님의 '최종 승소 판결'입니다.
본문 21장 앞부분에는 주인 없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무 죄 없는 암송아지를 대신 죽여 그 땅의 피흘린 죄를 씻는 '속죄의 규례'가 나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저주 앞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대속의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이번 부활절은 단순히 계란을 나누는 날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 드리워진 모든 저주와 정죄의 판결문을 주님이 십자가 나무 위에서 찢어버리시고, 다시 사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무죄'를 선포하신 날입니다. 이번 특별새벽집회에서 무릎 훈련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무에 달린 자의 수치가 아니라, 무덤을 박차고 나오신 이의 영광이 내 삶의 실재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 삶의 모든 죽어 있는 영역, 저주받은 것 같은 절망의 자리마다 부활의 생명이 흘러가기를 갈망하십시오.
나무에 달린 저주를 끊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고난의 깊이가 깊을수록 부활의 아침은 더욱 눈부실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부활의 증인으로 우뚝 서는 가스펠 가족이 됩시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