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시절, 박영돈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지금도 제 가슴 한복판을 때리는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학은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따라 의의 병기가 될 수도, 악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성령의 빛 가운데 거짓된 자아가 벌거벗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신학 공부는 다른 이를 죽이고 교회를 허무는 병기로 전락할 수 있다...그렇지 않으면 신학은 그것을 입은 우리를 짓누르고 얼어붙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얼음 갑옷'이 될 수 있다."
당시 이 말씀은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안다고 자부하며 '사명자'라 스스로를 치켜세웠던 그때, 정작 제 안에는 교만과 오만이 가득했습니다. 성경 지식이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 급급했지, 정작 제 인생길이 어디로 가는지, 하나님이 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시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사역자라 불렸지만, 속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그 말씀이 머리가 아닌 '삶'으로 이해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귀한 복음의 진리가, 우리가 매주 나누는 설교의 말씀이 과연 교회와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까? 아니면 혹시 우리를 짓누르고 차갑게 만드는 '얼음 갑옷'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정직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진실한 신앙생활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신앙의 출발선에 서야 합니다. 그것은 홀로 고립된 지식의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배양되는 활기찬 영적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공동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온기,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기도의 호흡,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매일 내 자아를 못 박는 은혜의 삶만이 우리를 딱딱한 돌밭에서, 가시떨기에서 건져내어 부드러운 '좋은 땅'으로 빚어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크고 작은 달란트가 교회와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의 마음이 지식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생명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좋은 땅'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멈춰있던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