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 SCRIPTURA

에발 산에서 드리는 예배

가끔 내 신앙의 컨디션에 따라 마음이 널을 뛸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좀 간절히 하고 말씀도 열심히 읽은 주간에는 왠지 떳떳하고 당당한 성도가 된 것 같다가도,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기력하게 무너진 주간에는 하나님 앞에 고개도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워집니다. 나도 모르게 '내 행위와 열심'을 내 구원의 원인과 자격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보니 당혹스러운 장면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의 산(그리심 산)이 아니라 저주가 선포된 저주의 산, ‘에발 산’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말씀의 돌판을 세우고, 바로 그 곁에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하필 축복의 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이었을까요?

진짜 예배는 선명한 말씀의 거울 앞에 내 삶을 정직하게 비추어보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 거룩한 척 포장하지만 사실 내 속을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탐욕과 위선, 내 힘으로는 단 하나의 말씀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에발 산’ 같은 연약함이 고스란히 폭로됩니다.
예배는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영적 파산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자리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자신의 완벽한 종교 행위를 자랑하며 성전 중심에 섰습니다. 그는 축복의 그리심 산에 서 있다고 착각했지만, 실상은 자기 의라는 저주 아래 갇혀 있었습니다.
반면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가 서 있던 그 자리가 바로 에발 산이었습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처절하게 인정했던 그 세리를 보시며 예수님은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 있는 그 저주의 에발 산 한복판에,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라는 ‘철연장’을 전혀 대지 않은 완벽한 제단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 제단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하여 받아야 할 삶의 모든 저주와 진노를, 예수님이 갈보리라는 에발 산 위에서 온몸으로 대신 받아내신 것입니다.

그 완벽한 복음의 은혜를 진짜 아는 사람은 이제 내 감정이나 형편에 속아 낙심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 십자가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 내 거친 삶의 현장(에발 산)을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축제의 예배 처소로 바꾸어 갑니다.

내 손에 묻은 인간의 철연장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만 바라보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승주

Sermons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명을 꽃피우는 법

"부활은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을 꽃피우는 사건입니다"

  • 반드시 이기는 전쟁2026.03.29
  • 도피성, 정죄를 이기는 은혜의 요새2026.03.15
  • 머리 둘 곳 없는 대제사장2026.03.01
Letters

자녀들을 위해 축복을 구합니다This Week

우리는 내 조건이나 실력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소멸하시고 순종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격으로 하늘의 보고(寶庫)를 물려받은 ‘축복의 상속자’들입니다. 상속자의 가장 위대한 영적 특징은 세상의 결핍이나 환경의 흔들림에 눈치 보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당당함에 있습니다. 돈이 없다고 낙심하여 '좌'로 미끄러지지 않고, 일이 좀 잘 풀린다고 교만하여 '우'로 치우치지 않으며, 오직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똑바로 서 있는 자들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2026.07.05
  • 믿음은 구원의 원인이 아닙니다2026.06.21
  • 부흥, 포기하지 않고 엎드린 자에게 찾아오는 선물2026.06.14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

에발 산에서 드리는 예배

가끔 내 신앙의 컨디션에 따라 마음이 널을 뛸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좀 간절히 하고 말씀도 열심히 읽은 주간에는 왠지 떳떳하고 당당한 성도가 된 것 같다가도,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기력하게 무너진 주간에는 하나님 앞에 고개도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워집니다. 나도 모르게 '내 행위와 열심'을 내 구원의 원인과 자격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보니 당혹스러운 장면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의 산(그리심 산)이 아니라 저주가 선포된 저주의 산, ‘에발 산’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말씀의 돌판을 세우고, 바로 그 곁에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하필 축복의 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이었을까요?

진짜 예배는 선명한 말씀의 거울 앞에 내 삶을 정직하게 비추어보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 거룩한 척 포장하지만 사실 내 속을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탐욕과 위선, 내 힘으로는 단 하나의 말씀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에발 산’ 같은 연약함이 고스란히 폭로됩니다.
예배는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영적 파산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자리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자신의 완벽한 종교 행위를 자랑하며 성전 중심에 섰습니다. 그는 축복의 그리심 산에 서 있다고 착각했지만, 실상은 자기 의라는 저주 아래 갇혀 있었습니다.
반면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가 서 있던 그 자리가 바로 에발 산이었습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처절하게 인정했던 그 세리를 보시며 예수님은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 있는 그 저주의 에발 산 한복판에,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라는 ‘철연장’을 전혀 대지 않은 완벽한 제단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 제단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하여 받아야 할 삶의 모든 저주와 진노를, 예수님이 갈보리라는 에발 산 위에서 온몸으로 대신 받아내신 것입니다.

그 완벽한 복음의 은혜를 진짜 아는 사람은 이제 내 감정이나 형편에 속아 낙심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 십자가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 내 거친 삶의 현장(에발 산)을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축제의 예배 처소로 바꾸어 갑니다.

내 손에 묻은 인간의 철연장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만 바라보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Gospel Church Symbol

T.F.E.A.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말씀 중심 교회, 가스펠교회

Seek.
Stand.
Transform.
Radi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