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사형 집행장 같던 제 인생에 찾아오셔서 “너는 내 자녀라”고 불러주신 하나님의 그 음성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봅니다.
제가 받은 '자녀'라는 이름표는 사실 제 실력으로 딴 상장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처절하고도 영광스러운 사랑의 증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버지는 제게 신명기 15장을 통해 조용히 물으십니다.
“승주야, 너는 지금 손에 무엇을 그렇게 꽉 쥐고 있느냐?”
본문에 나오는 ‘면제년’은 제 이성으로는 참 받아들이기 힘든 제도입니다.
7년마다 빚을 받지 말라 하시고, 종을 놓아줄 때는 아까워하지 말고 후하게 챙겨주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분명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저 역시 목사이기 전에 인간이기에, 제 것을 챙기고 싶고 손해 보기 싫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제 시선을 다시 십자가로 돌리게 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맞습니다.
‘속량’은 노예 시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저를 위해 누군가 대신 목숨값을 치르고 저를 자유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저 역시 죄의 빚에 눌려 영원한 파산을 기다리던 사형수였습니다.
도저히 갚을 길 없던 그 어마어마한 빚을,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죽이심으로 ‘면제’해 주셨습니다.
묵상할수록 깨닫습니다.
은혜는 제 안에만 쌓아두면 탐욕이라는 짐이 되지만, 흘려보낼 때 비로소 생명이 된다는 것을요.
제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제 작은 권리 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고 손을 꽉 쥐고 있다면, 그것은 제가 받은 ‘면제의 감격’을 잊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 저부터 손을 조금만 더 펴보려 합니다.
제게 상처 준 사람을 제 마음에서 먼저 놓아주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 앞에서 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으며,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아 불안해하던 마음을 아버지의 손에 맡겨보려 합니다.
무엇보다 받은 은혜를 가족에게, 이웃에게 흘려보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영혼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쥐고 있던 것을 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더 큰 손이 제 삶을 붙드시는 것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나를 묶고 있던 결박이 풀리고, 나를 통해 누군가의 절망이 풀리는 그 영광스러운 면제년의 기쁨이 저와 우리 가스펠 가족들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신명기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