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삶이 너무 빨라 숨이 찰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빨리 결정하고, 더 많이 성취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믿음의 길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린 삶은 비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번 주 신명기 17장의 말씀은 잠시 멈춰 서서 '붓'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에게 가장 먼저 '등사(謄寫)', 즉 말씀을 직접 베껴 쓰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만백성을 다스릴 왕이라면 당장 해결해야 할 국정과 훈련해야 할 군대와 산더미 같은 업무들이 많았을 텐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느리고 번거로운 말씀을 옮겨 적는 작업을 명령하셨을까요?
그 묵묵한 '등사'의 시간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먼저, '느림' 속에 담긴 '새김'을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눈으로 읽는 것은 빠르지만, 손으로 적는 것은 느립니다. 하지만 그 느린 시간 동안 말씀은 왕의 손끝을 타고 내려가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검색 한 번으로 말씀에 대한 지식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그 말씀이 내 영혼의 일부가 되기까지는 충분히 머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등사는 말씀을 지식으로 쌓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에 새기는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동기화'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왕이 율법서를 직접 등사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의 기준과 일치시키는 작업입니다. 내 안의 소리와 세상의 소리가 너무 커질 때, 하나님의 원본을 내 인생이라는 종이에 그대로 옮겨 적으며 내 삶의 '기본 설정값'을 다시 맞추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지만, 나의 진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붓 끝에서 매일 반복되었겠지요.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 등사본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으라"고 하십니다. 말씀은 필요할 때만 찾아보는 해답서 정도가 아니라 항상 곁에 두어야 하는 왕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왕이 말씀을 곁에 둘 때 그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곁에 둘 때 비로소 세상의 유혹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 역시 왕 같은 존재로 이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등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승리의 시간입니다. 다윗이 항상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 승리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11